동서 냉전이 한창이던 1963년, 예일대학교 심리학 교수이던 스탠리 밀그램은 ‘처벌 학습증진 효과’ 라는 실험을 실시했다. 실험에 참가한 사람들이 할 일은 (학습자 역할을 맡은) 생판 모르는 어떤 사람의 학습능력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그가 질문에 오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주는 거였다. 전기충격 스위치는 제일 약한 충격인 15볼트에서부터 450볼트까지 배열되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처음 틀렸을 때는 15V를, 그 다음부터 한 단계씩 더 높은 충격을 주도록 했다.

실험 결과, 처음부터 끝까지 냉정하게 전기충격을 가한 피험자는 아무도 없었다. 모두 심각한 내적 갈등을 경험했다. 중요한 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중 70%가 (학습자가 과도한 전기충격에 실신한 것처럼 보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전기충격을 줬다는 거다. 처음에 갈등하던 사람들도 일단 전기충격을 주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오히려 단호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명령에 따른 70%는 공감능력도 있고 남과 잘 지내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이다.

밀그램 복종 실험, 최고 난이도 수행장면
뭐, 또 틀렸어? 이번엔 몇볼트 줘야되?
아…제발…

2012년 영화 <본 레거시>는 매우 과소평가된 영화였다. 가장 큰 이유는 ‘맷 데이먼이 없는 본 시리즈는 앙꼬 없는 찐빵과 같다’는 선입견 때문이었을 거다. 스토리도 문제였다. 오리지널 본 시리즈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라는 애매한 위치도 그랬고, 약물에 의존하는 능력자(약이 없으면 바보 멍청이)라는 설정도 김 빠지게 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실성이나 현실 인식의 깊이에서는 오히려 오리지널 제이슨 본 시리즈보다 한 수 위였다.

우선 이 영화의 약점이라고 지적되는 초능력 약물은 사실 최신 생명공학 트렌드를 반영한 설정이다. 주인공 애런 크로스(제레머 러너)를 수퍼 첩보원으로 만들어주는 약물의 정체는 미토콘드리아의 효율을 증대시키는 바이러스인데, 실제로 요즘 의학계에서는 바이러스를 이용해 미토콘드리아를 조작하는 기술들이 동시다발적으로 개발되고 있다. 그러니까 수십 년 내에 진시황이 찾던 불로장생의 영약이 발명될 수 있다. 그 약의 정체는 바이러스일 것이고 말이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유능하지만 정당성이 없는 권력기관이 자기 생존을 위해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냉정하고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를 특히 잘 보여주는 인물은 연구자 마타 시어링 박사(레이첼 바이즈)다.

그녀는 처음에 과학을 위해서 이 실험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알고 보니 프로그램이 요구하는 생체실험의 수준이 인권이나 윤리기준을 위반하고 있었지만, 그녀는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마치 밀그램의 실험에서 피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녀는 심지어 실험대상자들이 이의나 의문을 제기하면 그들의 사소한 약점을 잡아 눌러버리는 단호함까지 보여준다. 그녀에게 악의는 없었다. 그저 성실하게 주어진 일을 다했을 뿐이었다.

직분에 충실하기는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다. 애런 크로스와 시어링 박사를 ‘살처분’ 하려 드는 CIA의 손실대응팀장 에릭 바이어 대령(에드워드 노튼)과 팀원들에게도 악의는 없다. 이들은 오히려 이런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누구는 그동안 이루어낸 성취가 사라지는 걸 아까워하고, 다른 이는 사라져야 할 아까운 인재들을 안타까이 여긴다.

하지만 일단 일이 터지자, 이들은 조직을 위해서 열과 성을 다해 살육에 앞장선다. 그리고 이 성실한 일꾼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 제이슨 본이 목숨 걸고 폭로한 진실들은 묻혀버린다. 파멜라 랜디는 배신자로 매도되고, 제이슨 본은 위험한 수배자가 되며, 나머지 관련자들은 그저 죽어나간다. 제이슨 본이 거둔 작은 승리가 애런 크로스와 나머지에게는 사형선고라는 거대한 재난이 되는 거다.

뭐야, 제이슨 본이 저기까지 폭로한거야? 아… 정말 하기 싫은 일을 해야되나…

무서운 건, 이게 그저 영화 속 이야기만이 아니라는 거다. 2007년 미국에서는 NSA가 주도했던 전세계 통신감청과 개인사찰 프로그램인 ‘프리즘’이 폭로되었지만 진상은 얼렁뚱땅 덮여지고 폭로자인 에드워드 스노든은 배신자로 찍혀 도피생활 중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이 영화가 개봉된 지 3개월 쯤 지난 다음, 우리나라의 국정원에서 SNS 댓글조작 사건이 터졌다. 영화 속 CIA가 구사하던 과학이나 정보기술 수준에 비하면 조잡하고 저열하기 그지 없었지만, 어쨌든 발각되었을 시점에는 엄청난 범죄였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사건은 연약한 국정원 여직원을 야당 당직자들이 감금한 범죄사건으로 뒤바뀌어 버렸다. 그리고 작년 7월에는 국정원의 스마트폰 해킹팀으로 의심되던 프로젝트의 담당자가 갑자기 자살하기도 했다.

이 모든 일이 벌어지는 동안 어딘가에선 누군가 성실하게 자기 역할을 다 했을 거다. 같은 이유로 나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단식농성을 하는 곳에 가서 소위 ‘폭식투쟁’을 벌인 이들도 사회병질자는 아닐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한국 현대사에 길이 남을 추악한 행위였다고 할지라도, 그들 개개인은 자신들이 믿는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 성실하게 역할을 다한 거다.

출처: 뉴스원

우리는 어릴 적부터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라고 배운다. 그게 착하고 성실한,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반대로 행동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느새 우리는 주어진 일을 성실하게 완수하는 것만으로 내 책임을 다했다고,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세상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원문: 싸이코짱가의 쪽방


※ 이 글은 <아레나> 2016년 2월호에 실렸던 글입니다.



본 레거시: 착함과 올바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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